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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미남 배우 ‘아랑 드롱’의 추억

그를 예전에 한국에선 ‘아랑 드롱’이라고 불렀다. ‘아랑 드롱처럼 잘 생겼다’나 ‘한국의 아랑 드롱’ 같은 말은 그의 영화를 동시대 극장가에서 본 적 없는 아이들도 무슨 말인지 또렷이 알았다. ‘아랑 드롱’은 미남의 대명사였고, 그는 곧 ‘세기의 미남’이었다. 이달 중순 별세한 배우 알랭 들롱 얘기다.   개인적으로 그의 외모에 감탄한 건. 뒤늦게 TV에서 본 영화 덕분이다. 제목도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지막에 그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영화였다. 추정컨대 시몬 시뇨레와 함께 나온 ‘미망인’(1971, 원제 Le Veuve Coderc) 아닐까 싶은데, 확실하지 않다.   사실 그가 마지막에 총에 맞아 죽는 영화는 한둘이 아니다. ‘암흑가의 세 사람’(1970, 원제 Le Cercle Rouge)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그는 5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탈주범, 전직 경찰과 손잡고 보석상을 터는 역할이다. 얼굴에 콧수염을 붙였지만, 미남인 줄 몰라보긴 힘들다. 더구나 그의 ‘바바리 코트’ 차림은 극 중 상황을 모르면 패션 화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물론 ‘태양은 가득히’(1960, 원제 Plein soleil)를 보지 않고 ‘아랑 드롱’을 말하기는 힘들다. 당시 25세의 그는 잘 생긴 외모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이 아니라 부잣집 아들의 가난한 친구 톰 리플리로 나온다. 말이 좋아 친구지, 부잣집 아들 필립은 톰을 하인 대하듯 한다.   톰은 요트 위에서 필립을 죽이고, 그의 서명과 편지를 위조하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넘기고, 결국 바라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 보인다. 그 다음의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톰의 거짓말과 살인은 이제 막 탄로가 났는데, 톰 자신은 이를 모른 채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와 전혀 다른 결말이다. 덕분에 그 미소는 일그러진 청춘의 욕망을 응축한 듯 보인다.   “눈빛은 그 사람의 영혼을 나타내는 것”. 그가 1996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내한 목적은 그의 이름을 딴 코냑과 향수 홍보였으니, 한국 영화계와의 접점이라면 2007년 칸영화제를 꼽게 된다.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 당시 시상자가 바로 그였다. 지금 찾아보니 당시 기사에 ‘세기의 미남’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사실 그의 삶에 대해 잘 몰랐다. 스타의 언행이 실시간 전파되는 요즘 같은 시대를 거쳐왔다면, 그처럼 ‘세기의 미남’으로 기억이 봉인되는 배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리플리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거짓말을 거듭하다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는데, ‘태양은 가득히’에는 이런 묘사가 없다. 의심스러우면 찾아보시길. OTT에 알랭 들롱의 출연작이 여러 편이다. 이후남 한국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미남 배우 미남 배우 한국 영화계 배우 알랭

2024-09-02

아카데미영화박물관서 송강호 회고전 열린다

LA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한국영화 상영 시리즈로 배우 송강호(사진) 회고전을 연다고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13일 전했다.   박물관은 오는 12월 7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 기간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기생충'(2019)을 비롯해 '사도'(2015),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박쥐'(2009), '택시운전사'(2017), '반칙왕'(2000), '괴물'(2006), '살인의 추억'(2003), '밀양'(2007) 등 송강호의 대표작을 상영한다.   또 행사 초반인 12월 7~10일에는 송강호를 직접 초청해 현지 관객과 대화하는 행사도 마련한다. 관객들은 그의 주요 작품을 관람한 뒤 그에게서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갖게 된다.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아카데미시상식을 주관하는 아카데미재단이 2021년 LA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이번 행사는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한국 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기획한 세 번째 행사다. KF가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송강호를 한국 영화사를 장식한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꼽으면서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선보이며 연기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배우"라고 소개했다.   KF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해외 관객들이 한국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송강호라는 배우를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국 영화 및 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아카데미영화박물관 게시판 게시판 아카데미영화박물관 한국 영화계 초청 영화

2023-11-14

[수필] 점점 좁아지는 지구촌

세계가 시공간적으로 매우 가깝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지구촌이다.   미국 이민 붐이 불었던 70년대 말 히트한 ‘나성에 가면’ 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듬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 주세요 /…. /안녕 안녕 내사랑’.       한번 가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를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흠뻑 묻어난다. 그땐 사랑하는 사람이 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으며 울고 웃으며 그리움을 달랬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대한민국 국민 소득은 세계 하위권이었다. 매년 수만 명이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 있든 원하는 시간에 영상통화나 메신저로 대화가 가능한 시대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나성은 무엇이고, 편지는 또 뭐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민 간 친지나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국제전화 요금은 웬만한 이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엔 유선전화 한 대 없는 집이 많았다. 국제우편으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 소식을 주고받았다.     봄이 끝난다는 지난 5월의 마지막 날, 호암미술관에 ‘김환기 회고전’을 보러 갔다. 김 화백은 한국 미술사에 ‘추상 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선구자이다. 일본서 공부한 후 서울대, 홍익대의 미술대학 교수가 됐고, 파리에서 3년 활동하다 귀국해 다시 홍대 교수로 임직했다. 그 후 뉴욕에 정착해서 11년간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초대 예술원 회원,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라는 작품은 뉴욕에서 탄생했다.     호암미술관은 경기도 용인의 깊은 산속에 있다.  차가 없으면 방문이 불가한 곳인 줄 알면서도 김 화백의 모든 작품을 거의 다 볼 수 있기에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에버랜드에서 무조건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그런데 올 때가 문제였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 택시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마침 그때 미술관에서 나와 차를 타려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차를 탈 수 있는데 까지만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타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LA 한인타운 근처에 산다고 했다. 부인이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서울에 있는 ‘환기미술관’에도 갔었고 이번 회고전에도 왔다고 했다. LA 집에 김환기 화백의 복제품 그림이 있는데 이번에도 하나 샀다며 뒷좌석에 있는 그림이 들어 있는 원통을 가리켰다.     지난 7월 1일 토요일 아침, 한 신문에 눈에 번쩍 띄는 글이 있었다. 여배우 윤소정의 6주기  추모 글이었다. 윤씨는 한국 영화계 원로인 윤봉춘 영화감독의 딸이고 남편은 유명한 배우이자 탤런트 오현경씨다. 그 글을 읽으며 윤씨와의 짧은 인연을 돌아봤다.     남편이 서울에 있을 때 윤씨와 또 다른 방송인과 셋이서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윤씨가 LA에 집이 있다고 했단다. 남편이 우리도 거기 집이 있는데 LA 어느 곳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 타운하우스다, 우리도 그곳에 산다. 몇 번지냐?”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다 보니 세상에나!  작은 공터를 사이에 둔 우리 집 바로 다음 번지였다고 한다. 그때 윤씨는 LA에 있는 식당을 남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윤씨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LA에서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던 적이 있다. 그 후 그녀를 만난 적이 없는데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봄에 큰아들이 한국에 다녀갔다. 가을에 동생과 함께 또 오겠다고 해서 내가 갈 테니 내년에 오라고 했다. 전에는 부모인 우리가 애들 보러 LA로 가곤 했는데 요즘은 거꾸로 됐다. 한국에 사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에 사는 자녀들이 전에 없이 한국에 자주 온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갔던 30여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반면 LA는 휴가철이면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로 몸살을 앓았다. 요즈음은 한국이 미국에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며칠 전, LA의 같은 교회 다니는 이 권사와 통화를 했다. 나도 잘 아는 권사 가족이 한국으로 아주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이제는 말도 잘 통하는 고국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고 했단다. 이 권사는 최근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늘고 있다며 한국의 급격한 발전으로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세계 곳곳에서 한국으로 모여든다.  이번 한국방문서 놀란 것은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거다. 특히 TV 예능프로 등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 감탄했다.     거기에는 아마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BTS의 인기도 한몫 한 것 같다. 그들의 엄청난 영향력 덕분에 한국을 향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졌다. 지난 6월 열렸던 BTS 10주년 행사에는 전 세계의 ‘아미’ 수만 명이 서울에 몰려들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종래의 거리 개념이 없어졌다. 국가 간의 경계도 무너졌다. 서울에 앉아서 세계 도처의 뉴스를 보고 들으며, 지구 반대편 나라 거리의 골목까지 나온 세계지도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화라는 말 그대로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단위가 되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지구촌 한국 미술협회 한국 미술사 한국 영화계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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